케이채, 말이 필요 없는 사진

최고관리자 74


말이 필요 없는 사진
거리 사진가 케이채

마음을 울리는 사진은 많은 수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진 자체가 보는 이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전 세계 70여 개국 사람들의 삶을 담은 거리 사진가 케이채 사진을 보면서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피사체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때로는케이채의 여정을 따라 거리를 여행하는 여행가가 되었다가 어느 사진 앞에서는 거리에 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됐다. 전 세계를 컬러풀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케이채에게 그의 사진 작업과 카메라에 대해 물었다. 




Leica M6 / Summilux 50mm 4th 

스페인 작은 마을 아빌라에서 발견한 느린 걸음의 수녀님.


여행 사진가와 거리 사진가, 모험 사진가까지 케이채를 지칭하는 수식어가 다양하다. 스스로를 어떤 사진가라고 생각하는가?

여행 사진가보다는 거리 사진가에 가깝다. 많은 사람이 내가 촬영한 풍경 사진을 좋아하지만 나는 사진가로서 꾸며내지 않은 삶의 조각을 담아내는 작업을 커다란 목표로 삼아왔다. 평소 다양한 사진을 담곤 하는데 풍경 사진 또한 거리 사진을 찍듯이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 촬영하는 방법을 좋아한다. 모험 사진가라는 표현은 몇 년 전 한 큐레이터가 붙여준 별명이다. 내가 사진을 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모험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험 사진가도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Canon EOS 7D / EF 85mm f/1.8 USM / (F2.5, 1/400초) / ISO 800 

 쿠바 아바나에서 폭우가 쏟아졌던 날 풍경. 


지금까지 진행한 사진 작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컬러풀 라이프. 나는 세상을 방랑하며 늘 컬러를 쫓아왔다. 자연스레 거리에서 만나는 누군가의 인생에 관심이 갔다. 다양한 문화와 풍경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삶.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색의 조화를 담아왔다. 내가 바라본 지구 위 우리네 삶은 총천연색으로 가득 차 있다. 




Leica M10 / Summicron 90mm 4th

 후쿠오카 오후 풍경. 한 빌딩에 새겨진 빛과 그림자, 그 사이에 통화하던 여인을 보았다.


케이채 사진에서는 누군가의 삶 속에 담긴 그들의 감정이 오롯이 전해진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촬영할 때 케이채만의 시선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진가는 사진을 찍을 때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찍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라고 늘 말해왔다. 사진가라는 타이틀 뒤에 서서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가 많다. 거리 사진가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며 자신의 모든 피사체를 우러러 보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나의 경우 항상 피사체가 놓인 삶에 녹아들고자 했으며, 사진보다 사람을 앞에 두고자 한다. 사진이 가진 기술적인 면보다 사진가가 피사체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일이 내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Leica M240 / Elmarit R 180mm

▲ 미얀마 북쪽 도시 바간에서 이른 아침 일출과 함께 떠오르던 열기구 움직임에 주목했다.


“케이채 사진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컬러입니다. 저는 흑백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컬러풀하고 화려한 색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남들과 다른 사진을 하거나 튀어보려고 컬러풀한 사진을 연구하려 하지는 않았다. 사진가는 무언가 담는 행위보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컬러풀한 사진을 찍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컬러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알록달록한 색에 끌려왔던 나로써는 세상을 바라볼 때 컬러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10대 시절에는 컬러풀한 남자 옷이 없어 어머니 옷을 훔쳐 입을 정도로 강한 색감을 좋아했다. 내 사진이 강한 컬러를 머금게 된 지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러한 내 스타일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흑백 사진을 전혀 찍지 않는다. 




Leica M240 / Summilux 50mm 4th

▲ 파키스탄 페샤와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손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73개국을 여행하며 사진을 담아왔다. 수많은 여정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큰 깨달음을 준 사진 한 장이 있다. 2015년 아프가니스탄 국경과 맞닿아 위험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파키스탄 페샤와를 여행했다. 페샤와는 폐허나 다름없었고 무장한 유엔군이 가득했지만 반대로 따듯한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였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도 사람들은 튀는 내게 관심을 보였고 페샤와 사람들 역시 없는 살림에도 음료를 내주며 호의를 베풀었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서 10여 년 여행 중 유일한 도난 사건을 겪었다. 아이폰을 도난 당한 사실보다 나를 감동시킨 이 도시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갖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숙소로 돌아갈 수 없어 거리를 헤맸고 또 다른 수많은 이가 나를 위로해줬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중 해질 무렵 한 할아버지와 손주를 발견하고 셔터를 눌렀다. 이 사진을 찍는 순간 오늘 일어난 일이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아 내가 이 장소에 없었다면 지금을 만나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여행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런 일련의 일들이 나를 더 좋은 사진의 순간으로 이끈다고 믿게 됐다.




Leica M10 / Summilux 50mm 4th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이파네마 해변에서 오후를 보내다 발견한 작은 몸짓, 그리고 부서지는 햇살 


현재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거리 사진을 촬영할 때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거리에서는 라이카 M 시리즈를 즐겨 사용한다. 라이카 카메라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첨단 카메라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10년 전쯤 새로운 카메라가 나올 때마다 사람이 아닌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대한 성공과 실패 모두 오직 내 노력과 손길에서 시작되고 완성되기를 바랐다. 레인지 파인더 방식인 라이카 M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최고의 선택이다. 최신 카메라와 비교한다면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촬영도 어려운 녀석이다. 다만 그렇기에 더 매력이 있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어렵게, 힘들게, 노력해서 찍고 싶다. 




Leica X 113 / (F5.6, 1/320초) / ISO 400

▲ 인도 사막 자이스알메르를 낙타를 타고 방랑했다. 낙타와 그 주인이 교감하는 모습이 좋았다.


거리 사진을 촬영할 때 주로 어떤 렌즈를 사용해, 피사체와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촬영하나? 

거리 사진가는 대부분 안정적인 35mm 초점 거리를 좋아한다. 다만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내가 갖는 시선과 가장 가까운 초점 거리를 50mm라고 생각해 50mm 렌즈를 주로 사용한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이 좋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 그렇다’라는 명언이 있지만 나의 경우 상대가 불편할 정도로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망원렌즈로 동물을 담듯이 사람을 담는 방법도 선호하지 않는다. 그 적절한 경계선이 50mm 초점 거리라고 생각한다. 




Leica M240 / summilux 50mm 4th/ (F8, 6초) / ISO 1600 

▲ 스리랑카 산, 아담스피크를 오르다 길을 잃었다. 하지만 길을 잃어서 이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곳이 많다.”고 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중 꿈꾸고 있는 여행지는 어디인가? 

73개국을 사진으로 담았지만 전 세계 34%밖에 되지 않는 범위다.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최소 100개국을 나만의 시선으로 담음으로써 내 사진 작업을 완성하려고 한다. 가고 싶은 곳을 꼽자면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지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여행은 코카서스 3국과 중앙 아시아다. 가능하다면 내년 중에 사진으로 담으려고 한다. 




Leica M8 / Summilux 50mm 4th 

 호주 멜버른 센터플레이스 골목을 걷다가 거리에 주저앉아 메뉴를 쓰는 소녀를 보았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인지 궁금하다. 

올해 새로운 포토 에세이 <말이 필요 없는 사진>을 출간했다. 하반기에는 다음 사진 작업을 위해 북아프리카로 떠날 예정이다. 이 여정을 위해 현재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전 아직 찍히지 않은 작품을 미리 판매하는 ‘찍히지 않은 사진을 팝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펀딩이 잘 되면 올해 10월부터 12월까지 북아프리카에서 사진을 담고 돌아올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에도 또 한 번 사진 여행을 준비하려고 한다. 




Leica M8 / Summilux 50mm 4th / (F1.7, 1/1000초) / ISO 320 

 뉴욕 브루클린 보타니컬 가든은 4월이면 벚꽃이 핀다. 벚꽃 가득한 풍경 사이로 연인을 발견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사진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 어떤 사진가와도 비슷하지 않은, 분명한 케이채만의 색을 가진 사진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PROFILE 


케이채 K. Chae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컬러풀한 지구의 순간들을 담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8개월 정도 남미에 머물며 사진 작업을 진행했고 지난 10년 간 70개국을 넘게 방랑하며 담아낸 사진들을 모아 새 포토 에세이 <말이 필요 없는 사진>을 출간했다.


• Instagram:@piecesofearth

 


• 사용장비 


Leica M 시리즈

거리 사진가 케이채는 라이카 M 시리즈로 거리 사진을 담는다. 그는 카메라가 찍어주는 사진이 아닌 오롯이 케이채 자신의 시선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조금 불편한 카메라를 선호한다.

 



탐나는사진가들


자신만의 뚜렷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꾸준한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젊은 사진가에게 다양한 협업 기회를 제공하는 디카톡의 사진 작가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디카톡은 사진 및 디지털카메라 관련 월간지 <디지털카메라매거진> 한국판에 매달 젊은 사진가 1명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연재 인터뷰를 게재하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젊은 사진가의 작업을 세상에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젊은 사진가가 환경적 제약 없이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 디지털카메라매거진>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