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사진상 수상자 사진작가 황규태, 자동 기술 복제 시대에 파종된 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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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기술 복제 시대에 파종된 사생아 

황규태 사진은 한마디로 나이스하다. 장수한 사진가로 지표를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사진적 속성이란 발목의 수갑을 가뿐하게 즈려 밟고 한바탕 잘 놀아, 한국 사진계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만큼 예외적인 행보를 거듭해왔다. 그가 제 17회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돼 미래 생명과 환경 문제,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묵시록, 그 후 After Apocalypse> 전시를 선보인다.




Usherette 


사진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개념이다. 내 사진은 내가 개념을 세워야 한다. 남의 개념을 인용해서 활용하려 하지 말고, 나만의 뚜렷한 이미지를 가지고 개념화시키고 시각화시키려고 한다.




지금까지 개인전 17번과 국내외에서 다수의 그룹전을 진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에 오고 1973년에 프레스센터에서 처음으로 가졌던 개인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한국에는 없던 전혀 새로운 형식을 가진 사진전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금은 ‘만드는 사진’이 보편화돼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 대부분 원로 사진작가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봤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인상적인 전시로 기억에 남아 있다.




50여 년이란 긴 세월의 작품 경향을 짧은 인터뷰로 모두 다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동안의 발자취를 시기별로 나눠 초기, 중기, 현재로 나눠보고자 한다. 사진 작업 초기의 작품 경향에 대해 말해 달라.

지금까지 사진 활동을 어떤 맥락에서라도 초기, 중기 등으로 나눌 수가 없다. 사진의 내용이나 형식은 큰 범주에서 볼 때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형식적인 부분에서도 스트레이트한 방식과 메이킹적인 방식 모두 혼용되거나 확장돼 왔을 뿐, 큰 갈래에서 본다면 같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했을 당시 한국 사진계는 주로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이나 ‘살롱사진’, 혹은 스트레이트한 ‘흑백사진’이 각광 받던 시기였다. 나 역시 당시 특별한 이념이 있던 시기는 아니었으나 점차 ‘사실주의 사진’과 ‘조형추상주의 사진’ 모두 기반을 두면서 외형적으로 이중 노출, 혹은 몽타주 기법과 같은 현대적인 실험 기법들을 사진 작업 초기부터 적용했었다.




1960~1970년대 한국 사진계는 리얼리즘 사진이 강했다. 스트레이트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속성을 중요시해 이중 노출, 몽타주, 콜라주 같은 방식을 취한 만드는 사진은 사진이나 회화와는 또 다른, ‘제3의 어떤 것’으로 취급 받았다. 반면, 극소수이기는 하나 ‘외국에서 돌아와 주관적인 사진은 황규태의 컬러사진전서 부터(육명심, 국립현대미술관 편 「한국현대미술사 -사진, 1978」)’라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이러한 분위기에서 작업 방법을 바꾸지 않은 점은 큰 모험이었을 것 같다.

당시 사회 구조적으로 초현실적이고 주관적인 사진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메이킹 사진(Making Photo)은 공모에서도 배제되거나 옹호 받지 못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이유로 적극적으로 ‘만드는 사진’을 수용하는 작가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유행이나 주변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내면적인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주관적인 사진 작업을 메이킹 방식으로 계속 했다. 한국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이 적었던 반면 해외에서는 미국 현대 사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경향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로 잡지에 소개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실험적 기법과 초현실적인 방법론을 이어가고 있다. <가짜가 아름답다(2006년)>와 <꽃들의 외출(2013년)>은 모두 ‘꽃’을 소재로 초현실성이 투사된 작품이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

가짜(조화) 꽃과 진짜 꽃이 혼재된 작품이다. 사진 촬영 방법이나 변형의 정도 차도 크며 살아있거나 죽은 것 또한 구별이 모호하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어느 꽃이 진짜이고 어떤 꽃이 가짜인지 관객은 전혀 알 수 없다. 진짜보다 아름다운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 꽃을 소재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는 가짜가 만연된 사회에 살고 있고, 이 작품들을 통해 진짜 같은 가짜에 대한 사회적 조롱을 담았다.




Christina's World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대규모로 전시한 <사진 이후의 사진(2014)>전에 대해 말해 달라.

당시까지 해왔던 작업을 총 4개 파트로 나눠 전시했다. Part 1은 TV 화면, 컴퓨터 모니터를 접사 촬영해 크게 확대하거나 컴퓨터 화면상에서 이미지 픽셀을 확대, 조합한 사진들로 구성했다. Part 2는 국기가 갖는 경의나 희망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기(banner)’ 시리즈를 설치했다.


Part 3은 70년대 초 암실에서 작업한 몽타주 작업과 디지털 몽타주, 필름을 태워서 작업한 버닝 시리즈 등 대상을 그대로 찍거나 선택(차용)한 이미지를 새롭게 재현한 사진으로 구성했다. Part 4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미래에 다가올 현대 사회 욕망을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색채로 풀어낸 작품들이었다. <사진 이후의 사진(2014)>은 어느 한 테마를 가지고 한 전시가 아니라 40여 년에 걸친 내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 모아서 보여준 전시다.




가장 최근의 작품 <PIXEL(2017)>은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 중에서 원색의 픽셀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가장 미니멀한 형태를 띠고 있다.

픽셀 작업은 1990년대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보여줬는데 픽셀 작업만을 모아서 한 전시는 <PIXEL(2017)>이 처음이다. 주로 사진 이미지에서 채집하거나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에서 발견한 무수한 픽셀로 작업했다. 러시아 미술가 카시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손으로 그린 그림과 내 컴퓨터 픽셀이 가진 극한의 미니멀 하드 엣지를 비교해볼 수 있다. 만들지 않고 의미 있는 픽셀들을 취사선택했다. 말레비치 이후 포스트 하드 엣지라고 생각한다.


사각형의 반복된 증식은 이진법의 ‘0101’ 수학이기도하고 기계가 놀아낸 마술이기도 하며 사진을 확대하고 인화지 위에 인화했으니 사진이기도 하다. 내 사진은 기계의 내장에서 소화되어 형태소(形態素)로 전환된 ‘자동 기술 복제 시대’의 사생아다. 그러나 무엇을 흉내낸 모조품이 아니다. 진짜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더 생생하게 ‘파생실재(장 보드리야르의 Hyperreal)’로 파종했을 뿐이다. 나는 사진에 불충하면서 창조적 행위에 집중하지 않는 데까지 왔다. 내 픽셀 작업은 사진에 대한 나의 이의(異意)이면서 사진에 바치는 헌사다.




이번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묵시록, 그 후 After Apocalypse>는 어떤 작품들로 채워지나?

<묵시록, 그 후 After Apocalypse>라는 전시 제목처럼 미래에 다가올 법한 환경 문제나 생명 문제,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했다. 전시작 20여점 중에는 처음 발표한 작품도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 전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가로 살아온 50년은 결코 짧지 않는 세월이다. 많은 후배, 혹은 사진학과 지망생들이라면 한번 쯤 깊게 고민해야 하는 현대 사진의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들이 한 것, 근사한 것, 화려한 결과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사진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의무나 어떤 목표가 있어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 결코 자신이 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사진 작업은 놀음꾼이 놀음에 미치고, 빠지듯 그런 재미가 있어야만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사진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 디지털카메라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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