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우리를 새기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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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새기는 여행

여행 사진가 최지혜

작가는 다채로운 방법으로 여행을 감각한다. 소설가는 글을 쓰며, 음악가는 소리를 수집하며, 사진가는 사진을 찍으며 미래에 추억할 지금의 여행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또렷이 남긴다. 여행 사진가 최지혜는 자신은 없고 풍경 사진만 가득한 수많은 여행 사진 폴더를 보며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여행 사진 작업에서 풍경 속에 있는 본인과,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을 촬영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곳에 우리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때의 나를 기억할 수단으로 사진을 택한 셈이다. 최지혜가 사용하는 필명처럼 ‘풍경 속 인물’ 시리즈는 수많은 이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는 달콤한 꿈을 꾸게 만들었다. 디지털카메라매거진이 달콤한 여행의 행복을 전하는 최지혜를 만나 여행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 물었다.




SONY α7R III / FE 70-200mm F2.8 GM OSS / 초점 거리 168mm / (F5.6, 1/400초) / ISO 100  

▲ <Wadi Rum Desert , Jordan>. 광활한 사막 속에서.


필명 달콤한제이(dalkom.j)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삶이 항상 달콤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달콤한 인생을 살고 싶다, 라는 바람을 담아 ‘달콤한제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제이는 본명인 JIHYE의 첫 자인 J를 사용했다.





SONY α7R III / FE 24-70mm F2.8 GM / 초점 거리 24mm / (F3.2, 1/1600초) / ISO 100 

▲ <Trubsee, Titlis, Switzerland>. 간결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기 원했다. 산과 인물이 정중앙에 배치될 수 있도록 함께 간 동생에게 원하는 구도의 사진을 보여주고 촬영을 부탁했다. 여행지에선 셀프로 촬영하거나 지인에게 부탁해 꼭 내 자신을 사진으로 남긴다.


지금까지의 여행 사진 작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풍경 속 인물. 풍경만 찍는다거나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주로 풍경과 인물의 조화로움을 생각하며 사진을 촬영한다. 자연과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 관계가 자연스레 사진 속에 녹아나도록 하는 작업이 참 즐겁다. 특히 여행 사진은 더욱 그렇다. 내가 어떤 여행지에서 어떤 모습으로 순간을 즐겼는지 잘 보여주는 사진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여행 사진이다.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 혹은 도심 속에 인물이 들어가야 비로소 사진 한 장이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SONY α9 / FE 24-70mm F2.8 GM / 초점 거리 24mm / (F3.2, 5초) / ISO 320 

▲ <Badwater, Califonia>. 삼각대를 놓고 셀프로 찍었던 사진이다. 어두운 환경에서 인물에 포인트를 줄 수 있게 스마트폰 조명을 활용해 사진을 찍었다.


‘풍경 속 인물’ 연작을 보면서 여행 사진이 단순히 풍경을 담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진을 찍는 사진가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좋은 여행 사진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가 봤던 풍경, 함께했던 사람들, 또 그 속에 있는 내 모습을 잘 기록하는 일 자체가 여행 사진이 아닐까? 그런 작업을 나만의 스타일로 풀어내고 있는 사진가라고 생각한다. 항상 누군가 내 작업물을 보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사실 여행지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행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다 표현하는 일도 여행 사진 작업의 한 부분이겠지만 나는 여행이 주는 행복감, 즐거움, 설렘 등 긍정적인 부분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주로 한다. 또 여행지에서는 삼각대를 사용하거나 지인에게 부탁해 풍경 속 내 모습을 항상 담아온다. 예전에는 여행지에 함께 간 친구들이나 현지인의 모습만 담아왔는데 언젠가 외장하드를 보다가 전부 다른 사람들 사진뿐인 상황을 보고 ‘내 모습은 어떠했나’라는 생각에 잠겼다. 그 후로 여행지에서의 내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SONY α9 / FE 85mm F1.4 GM / (F1.8, 1/1000초) / ISO 100

 <경주 불국사 겹벚꽃>. 촬영 당일 비 소식이 있어 아침 일찍 촬영지를 찾았는데, 마침 강풍이 불어 떨어져 있던 꽃잎이 바닥에서부터 휘몰아 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달콤한제이 SNS 피드를 보면서 주변에서 흔히 봤을 법한 장소인데 현실이 아닌,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특유의 시선으로 사진을 담기 위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진을 시작하고 행복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이유다. 평범한 일상도 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로 특별해진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풍경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쉽게 예를 들자면 매일 해가 뜨고 지는 평범함 일상이 빛을 가득 담은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하는 내게는 특별한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 특별함도 어느 순간 무뎌질 때가 오더라. 예쁘고 아름다운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그 자체가 평범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어떤 장면을 봐도 예전만큼 감정이 복받쳐 오르지 않았고 자연스레 셔터를 누르고 싶은 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스스로 많이 노력했다. 습관적으로 셔터를 누르지 않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하고 나만의 색을 찾아가는 데 몰두했다. 


그런 노력 속에서 두 번째 행복과 희열을 동시에 느꼈다. 종일 촬영하고 들어와서도 그날 찍은 사진을 보정하기 위해 날이 새도록 뜬 눈으로 지새운 적도 많다. 또 내 사진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행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깔아두고 작업하다 보니 지금과 같이 밝은 느낌을 가진 사진이 주된 색이 됐다. 많은 분이 내 사진을 동화 속 장면 같다고 느끼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밝고 달콤한 느낌의 색감을 가진 사진으로 완성하는 일이 아직도 가장 어렵고 고민되는 부분이다.





SONY α7R III / FE 70-200mm F2.8 GM OSS / 초점 거리 70mm / (F4.5, 1/400초) / ISO 100

▲ <Giza, Egypt>. 노을로 물들어가는 기자 피라미드.


매번 여행지 풍경에 딱 맞는 의상과 소품을 준비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촬영 장소부터 의상, 소품까지 사전에 전부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인가?

대부분 그렇다. 누가 보면 여행을 가는데 꼭 그렇게까지 준비해서 떠나야 되냐, 라고 말할 정도로 준비해서 떠난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수많은 여행을 경험해보니 미리 준비한 여행과 보이는 대로 촬영한 여행은 결과물에 큰 차이가 있더라. 때문에 어떠한 장소에서 어떤 사진을 찍고 싶다, 라는 구체적인 계획이 생길 때 다음 여행지로 선정하는 편이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색과 느낌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분위기를 최대한 담아낼 만한 의상과 소품을 준비한다. 그러기 위해서 촬영하고자 하는 곳의 지형이나 분위기가 어떠한지, 계절에 따라 날씨는 어떤지 검색을 많이 해보고 사진을 최대한 많이 본다. 지형적인 부분은 Google earth 앱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SONY α9 / FE 24-70mm F2.8 GM / 초점 거리 60mm / (F2.8, 1/640초) / ISO 100 

▲ <Ainikura, Japan>. 눈 내리던 동화마을.


여행 사진과 이야기를 담기 위해 매번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여행을 함께 떠난 이와 손발을 맞추고, 험준한 산에 오르더라도 의상에 신경 써야 하는 등 어려움이 따르지 않나?

맞다. 사진 한 장을 위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이를테면 여행지에서 좋은 시간대에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움직인다거나 사람이 없어야만 예쁜 장소는 결정적 순간을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또 장소에 맞춰 의상을 입고 가거나 갈아 입을 옷을 준비해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비와 소품 무게도 늘어났다. 셀프로 사진을 촬영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많이 번거롭다. 삼각대를 펴서 세우고 구도를 잡고 찍고 확인하고 이를 반복하는 작업이 가끔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그런 노력으로 원했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힘든 부분이 다 잊혀지면서 피로가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SONY α9 / FE 85mm F1.4 GM / (F2.8, 1/1000초) / ISO 100

 <굴업도, Korea>. 수크렁이 핀 9월 굴업도. 해 질 녘 빛에 반사된 수크렁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여행 사진을 촬영할 때 카메라가 가진 성능이나 기능 중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현재 소니 α9과 α7R III를 병행해 사용한다. 풍경 속 인물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다 보니 Eye-AF 기능이 많은 도움이 된다. 전문 모델과 사진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이 모델이 돼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카메라 앞에 서면 굉장히 어색해할 때가 많다. 촬영 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포즈를 많이 요구하는 데 이 기능 덕분에 초점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셔터를 누를 수 있어 좋다.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드는데 의도와는 다르게 초점이 벗어나버리면 그것만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SONY α7R III / FE 70-200mm F2.8 GM OSS / 초점 거리 70mm / (F4, 1/500초) / ISO 100 

▲ <Engelberg, Switzerland>. 푸르른 잔디 위로 펼쳐진 알프스 산과 그 속에 마주한 사람.


주로 어떤 렌즈를 사용해, 피사체와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촬영하는 편인가?

환경에 따라 렌즈 선택이 달라지지만 개인적으로 망원렌즈 특유의 풍경을 압축시키는 느낌을 좋아한다. FE 85mm F1.4 GM과 FE 70-200mm F2.8 GM OSS를 선호한다. 특히 FE 85mm F1.4 GM은 보케 표현력이 좋아 가장 사랑하는 렌즈다. 망원 계열 렌즈를 좋아하다 보니 촬영할 때 피사체와 조금 떨어진 환경에서 배경을 전체적으로 압축해서 촬영하는 편이다. 그렇게 촬영하면 확실히 인물과 풍경이 분리되면서 풍경 속에 인물이 쏙 들어간 느낌을 줄 수 있다. 망원렌즈를 선호한다고 말했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여행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렌즈는 편의성이 좋은 FE 24-70mm F2.8 GM이다.(웃음).




SONY α9 / FE 85mm F1.4 GM / (F3.2, 1/400초) / ISO 200

 <Cairo, Egypt>. 때마침 카이로 시장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해 줬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이어갈 예정인지 궁금하다.

2018년 6월, 이탈리아 돌로미티 여행 이후 산에 관심이 많아졌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산과 사람’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해나갈 생각이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 있는 산도 촬영할 계획이다. 물론 ‘풍경 속 인물’이라는 큰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아직 정확한 시기가 잡히지는 않았지만 만족할 만한 작업량이 채워지는 대로 ‘풍경 속 인물’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해볼 생각이다. 빠른 시일 안에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SONY α9 / FE 85mm F1.4 GM / (F4.5, 1/640초) / ISO 500

 <Kyoto, Japan>. 북적거리는 교토의 거리를 생각해 아침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사진을 찍으러 나섰다. 덕분에 한가로운 교토의 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사진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행복’과 ‘달콤함’을 주는 사진가로 기억되고 싶다. 아주 거창한 의미는 아니다. 그저 내 사진 한 장이 보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었으면 좋겠다. 사진을 보는 동안 삶에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PROFILE


최지혜 Choi Jihye


‘달콤한제이(dalkom.j)’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이자 여행자다. 다양한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을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 사진으로 풀어나가고 있으며, Sony Pro Photographer 2기, 한국 관광공사 VK Crew, 사진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인스타그램 @dalkom.j



탐나는사진가들


자신만의 뚜렷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꾸준한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젊은 사진가에게 다양한 협업 기회를 제공하는 디카톡의 사진 작가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디카톡은 사진 및 디지털카메라 관련 월간지 <디지털카메라매거진> 한국판에 매달 젊은 사진가 1명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연재 인터뷰를 게재하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젊은 사진가의 작업을 세상에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젊은 사진가가 환경적 제약 없이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 디지털카메라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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