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삶을 들여다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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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들여다보는 방식

거리 사진가 이경호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와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 내 삶과 타인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간접 경험해보거나 책이나 미술품을 보며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삶을 향유하는지 상상해본다. 사진은 때때로 영상 매체처럼 시각적으로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마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거리 사진가 이경호의 사진이 그렇다. 이경호는 우리에게 익숙한 삶을 정지된 장면으로 내어주지만 우리는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그 이야기는 내 것일 수도 다른 매체를 통해 경험한 누군가의 것일 수도 있다. 그와 만나면 사진들을 보며 내가 생각한 이야기가 맞냐고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거리 사진가 이경호라면 분명 그 이야기가 진짜일 수도 있겠다, 라고 말할테니까.




SONY α7 III / ZEISS Sonnar T* FE 55mm F1.8 ZA / (F3.2, 1/1000초) / ISO 400

▲ “당신의 마음만큼은 머리의 무게보다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적막한 골목길을 고개 숙인 채 홀로 걷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사진 작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삶.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조각을 프레임에 담는다고 표현하고 싶다.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결국 삶의 일부를 담아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일상과 모습을 담기도 하고 때로는 장소마저도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한 부분으로써 프레임에 고스란히 담아 기록하는 것이다. 특히 인물 뒷모습을 많이 담는다. 뒷모습은 앞모습과 달리 표정이나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통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작업은 내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주위 삶을 사진에 담아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SONY α7 III / ZEISS Sonnar T* FE 55mm F1.8 ZA / (F6.3, 1/320초) / ISO 100

▲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현장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차를 프레임 안에 걸쳐 촬영했다.


지금까지의 작업물을 보면서 가장 한국적인 거리 풍경을 담는 사진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속에서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진을 찍는 사진가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흔히 마주하는 일상을 새롭고 다양한 시각으로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여러 구도와 앵글로 담은 장면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인식시켜주고 색다른 느낌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촬영할 때 일부러 프레임 안에 차를 걸쳐 찍곤 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보는 이가 마치 자신이 그곳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SONY α7 III / FE 85mm F1.8 / (F1.8, 1/500초) / ISO 200

▲ 광장시장 안에서 촬영한 사진. 다양한 음식을 팔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 있는 반면, 이곳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도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과 같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의 도구로 사진을 촬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분위기가 더 잘 전해진다. 기록의 도구로써 사진이 갖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진으로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는 흔하다고 여겨 쉽게 지나치던 순간들, 혹은 직접 보고 경험했던 순간들을 다른 이가 온전히 느끼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전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자주 보는 풍경들, 매일 출퇴근하며 지나치는 장소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 등 다큐멘터리처럼 현장감 있게 그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냄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장면을 기록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색다르고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SONY α7 III / FE 85mm F1.8 / (F3.2, 1/100초) / ISO 1000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던 경비원. 문득 그가 적고 있었던 기록이 어떤 내용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거리 사진가 이경호는 정지된 순간을 담지만 작업물에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혹은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인상적이었다. 특유의 시선으로 사진을 담기 위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어떻게 촬영해야 사람들이 사진 속 상황을 공감하고 온전히 느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대표적으로 어떤 구도로 촬영할지를 고민한다. 이는 누군가가 사진을 봤을 때 적어도 그 순간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으면 촬영 당시 포커스를 맞췄던 촬영 의도가 다른 이에겐 전혀 전달력 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사진이 반드시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거나 이해시켜야 하는 도구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내 작업이 단순한 결과물이 되어버리지 않고 누군가는 공감하고 서로 느낀 바를 공유할 수 있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작업물이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다.


또 한 가지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입혀 사진을 표현할지, 아니면 당시 있었던 상황을 날것 그대로 써내려갈지 고민한다. 그때 있었던 사실을 새로운 이야기로 변형시켜 표현하는 방법도 좋지만 때로는 당시를 변질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는 방법도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SONY α7 III / FE 85mm F1.8 / (F1.8, 1/250초) / ISO 1000

▲  종로에서 유유히 어디론가 향하던 어르신.


유독 따듯한 빛을 가진 시간과 밤거리를 담은 사진이 많다. 어떤 시간대의 빛을 활용해, 어떤 피사체를 담는 일을 가장 선호하는지 궁금하다.

주로 저녁 시간대에 여러 인물을 자연스레 담는 촬영을 선호한다. 늦은 밤거리 사진을 많이 담는 이유는 사실 촬영 가능한 시간이 거의 퇴근길이 전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밤에 주로 촬영하고 있지만 밤거리 사진은 밝은 시간대에 하는 촬영보다 더 흥미롭다. ‘어둠’이라는 존재로 인해 오히려 더욱 뚜렷해지는 빛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빛에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야간에는 명암 대비가 더욱 강해져 강조하고자 하는 피사체나 정물을 두드러지게 표현할 수 있어 좋다. 


또한 낮 시간에는 보기 힘든 근로자의 삶과 마주하거나 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밀려올 때가 있다. 이 모든 이유가 단순히 사진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곤 한다.





SONY α7 III / ZEISS Sonnar T* FE 55mm F1.8 ZA / (F1.8, 1/1000초) / ISO 3200

▲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원래 담으려고 했던 피사체를 가려버린 또 다른 피사체. 오히려 더욱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결과물이 됐다.


사진을 찍으며 마주한 수많은 풍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비가 내리는 저녁에 우산을 쓰고 급히 뛰어가는 소년을 만났던 때가 기억난다. 어쩌면 이날을 계기로 거리 스냅을 본격적으로 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촬영하기 위해 셔터를 누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우산을 쓴 소년이 내 앞을 가로지르며 펄쩍 뛰어갔다. 원래 담으려던 피사체를 가리면서 말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그 장면을 담기 위해 순간적으로 초점을 소년에게 잡아 촬영했다. 비록 의도했던 바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왔지만 오히려 역동적이고 재미난 장면을 담았던 순간이다.





SONY α7 III / ZEISS Sonnar T* FE 55mm F1.8 ZA / (F6.3, 1/8000초) / ISO 200 

 천호대교 근처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어디론가 뛰어 가고 있는 소년. 노을 빛이 비춰지는 곳으로 누군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카메라를 들었는데, 들자마자 마침 소년이 지나갔다. 먼 거리에서 촬영한 후 크롭했음 에도 디테일이 유지됐다.


거리 스냅 사진을 촬영할 때 카메라가 가진 성능이나 기능 중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주로 야간에 촬영하기 때문에 고감도에서도 뛰어난 선예도와 색상 표현력을 발휘하는 노이즈 억제력이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한 번 촬영할 때 오랜 시간 걷는 편이기 때문에 배터리 성능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장면을 놓치지 않는 빠른 AF 성능도 빼놓을 수 없고 말이다. 이 모든 점에 가장 부합하는 바디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소니 α7 III다. 이전에 타사 바디를 사용했을 때도 AF 성능과 다양한 퍼포먼스에 만족했지만 빠르게 소모되는 배터리 성능이 옥의 티였다. 소니 α7 III를 선택한 이후로 언제, 어디에서나 걱정 없이 밤거리 촬영을 즐기고 있다.





SONY α7 III / ZEISS Sonnar T* FE 55mm F1.8 ZA / (F2.2, 1/400초) / ISO 1000 

▲ 비 오는 밤 우산을 쓰고 제 갈 길을 향해 걷는 이들. 한 인물만 독립적으로 담지 않고, 여러 인물과 밤비에 젖은 촉촉한 거리를 함께 프레임에 담았다.


주로 어떤 렌즈를 사용해, 피사체와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촬영하는 편인가?

현재 자이스 Sonnar T* FE 55mm F1.8 ZA와 소니 FE 85mm F1.8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다. 그중 주로 55mm 초점 거리를 애용한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가장 가까운 초점 거리면서 인물의 모습과 주위 풍경을 다양한 거리감으로 조화롭게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게가 가볍고 콤팩트해 출퇴근하며 부담 없이 소지할 수 있는 점도 장점 중 하나다. 평소 인물 모습을 독립적으로 담기보다, 인물이 현재 놓여있는 상황을 장소와 함께 넓게 담고자 거리를 최소 10m 이상 두고 촬영하는 편이다. 이 거리가 피사체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최적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크롭 시에도 디테일이 유지되는 훌륭한 해상도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웃음).





SONY α7 III / ZEISS Sonnar T* FE 55mm F1.8 ZA / (F1.8, 1/8000초) / ISO 200 

 스쳐가는 기억들.


앞으로 어떤 작업을 이어갈 예정인지 궁금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한국 곳곳을 다양한 시선과 구도로 담아보고 싶다. 특별한 명소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평소 발견하지 못했을 법한 곳을 주로 찾아 다녀보려 한다. 직업이 탄력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일인지라 제약이 따르긴 하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여러 곳을 여행하며 작업해보고 싶다. 기존에는 도심 속 풍경을 주로 고집했는데 앞으로는 인적이 드문 자연 풍경도 많이 담아보려고 한다.





SONY α7 III / FE 85mm F1.8 / (F5.0, 1/80초) / ISO 100 

 한적한 골목에서 홀로 일하고 있는 그. 마치 수많은 간판이 그를 가둬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 듯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사진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사진으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일상과 놓치고 있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이야기해주고 더불어 해외에는 한국의 모습들을 여러 장면과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주는 사진가로 기억 되었으면 좋겠다.




PROFILE



이경호 Lee Gyeongho


주로 저녁 퇴근길에 밤거리 풍경을 담는 사진가. 흔히 지나치는 일상들을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프레임에 담는다.


• 인스타그램 @w3rsip



탐나는사진가들


자신만의 뚜렷한 작품 세계를 가지고 꾸준한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젊은 사진가에게 다양한 협업 기회를 제공하는 디카톡의 사진 작가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디카톡은 사진 및 디지털카메라 관련 월간지 <디지털카메라매거진> 한국판에 매달 젊은 사진가 1명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연재 인터뷰를 게재하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젊은 사진가의 작업을 세상에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젊은 사진가가 환경적 제약 없이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 디지털카메라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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