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닉 우트 인터뷰, 지옥에서 할리우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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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할리우드까지 

지난 7월 19일 라이카 스토어 청담에서 사진기자 닉 우트(Nick Ut)를 만났다. 그는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알린 ‘네이팜탄 소녀’를 촬영한 사람이다. 사진기자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그는 2017년에 약 50년 동안 몸 담았던 AP(Associated Press, 연합통신)에서 은퇴했다. 이제 사진기자에서 사진작가가 되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닉 우트는 네이팜탄 소녀 사진으로 1973년에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퓰리처 상은 저널리즘, 문학, 음악 등 분야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저널리즘 사진 분야에서 가장 이름있는 상으로 사진기자에게 퓰리처는 매우 큰 영예이다. 퓰리처 수상 이후에도 닉 우트는 전장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그가 ‘라이카 스토어 청담’ 오픈을 맞이해 한국을 방문했다. 닉 우트는 네이팜탄 소녀를 촬영할 당시 라이카 M2를 사용했고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라이카 카메라로 수많은 현장의 모습을 담았다. 라이카는 2012년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라이카 명예의 전당 공로상을 전달했다. 이렇게 라이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그이기에 라이카에게도 무척 중요한 이번 새로운 라이카 스토어 오픈에 맞춰 한국으로 초대한 것이다. 그를 만나 그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네이팜탄 소녀 ⓒ Nick Ut 


당신에게 퓰리처 상은 어떠한 의미인가?

네이팜탄 소녀를 촬영하고 인화지에 떠오른 사진을 보면서 무슨 상이라도 받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사진을 보내고 난 후 하루가 지나 디렉터가 나를 불러 퓰리처 상을 받게 됐다고 전해줬다. 이미 수상은 결정됐지만 나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전달을 미뤘던 것이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에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난다.




당신은 사진 한 장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하고 느낀 사람일 것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보도사진을 사랑한다. 사진으로 현장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의 힘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사람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냥 피사체에 카메라를 향한다고 해서 의미있는 사진이 담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전에 상대방의 눈을 마주보고 충분한 대화를 나눈 뒤 셔터를 누른다. 상대의 마음을 알고 난 후에 촬영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또한 사건이 나타나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셔터를 누르는 편이다.




ⓒ Nick Ut


전쟁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당신의 안전에도 위협이 되는 일이다. 당신의 안전과 기록 두 가지 상황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며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

사진을 찍으면서 죽을 뻔한 적이 많았다. 전장에서는 도망갈 곳을 생각해 두어야 한다. 머리 위에서 폭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때는 한국군과 함께했다. 그들이 워낙 전투를 잘 해서 함께하면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는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포토그래퍼들은 전장에서 나를 찾는다. 그들은 “닉 우트와 함께 다니면 안전하다”고 말한다. 내가 피할 곳을 워낙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번은 지뢰를 밟은 적도 있는데 다행이 터지지 않았다. 촬영을 하고 있는데 미사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 적도 있었다. 한 뼘이라도 더 키가 컸다면 아마 죽었을 지 모른다. 보통 카메라를 5대 정도 휴대하고 촬영하는 편인데 전장에서는 카메라가 망가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등 뒤에서 총을 쏴서 몸을 피하느라 물에 뛰어들었더니 가지고 있던 카메라가 모두 망가지기도 했다. 워낙 위험한 곳을 다니며 촬영을 하기 때문에 다리, 배, 팔에 총을 맞기도 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킴 푹과 관계가 마음을 움직였다. 당신의 사진에 대해 킴 푹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둘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네이팜탄 소녀의 주인공인 킴 푹은 당시 몸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 화상을 입었다. 나는 셔터를 누른 후에 길에 카메라를 던져놓고 그녀에게 달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마실 물을 모두 부어 몸에 붙은 불을 껐다. 다른 미디어가 모두 떠나버렸지만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킴 푹을 차에 태우고 병원까지 약 40분 가량을 달렸다. 병원에서는 그녀의 상태를 보고 사이공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 그녀가 목숨을 잃을 것이라 확신했다. 의사에게 내 기자증을 보여주면서 “내일이면 사진이 공개될텐데 당신이 치료한 그녀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얘기했다. 


병원에 그녀를 맡기고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필름을 현상했다. 회사에서 다음날 사진을 촬영한 장소로 가보라고 해서 도착하니 킴 푹의 어머니가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렸다. 지금은 킴 푹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과 친한 사이가 됐다. 지금 그녀와 가족들은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있다. 매주 연락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있다. 곧 베트남에 갈 계획이다. 마을에 그녀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생겼다고 하는데 이제는 네이팜탄 소녀 사진을 찍은 장소라고 해서 관광명소가 됐다. 사진에 등장한 아이 중 한 명은 그 마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 Nick Ut


라이카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베트남에서 사용한 카메라를 아직 가지고 있는가? 당신에게 라이카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 당시 사용했던 라이카 M2는 지금 워싱턴 DC 근처에 있는 뉴지엄(Newseum)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나는 라이카를 사랑한다.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 사용한 카메라도 라이카였다. 10대 때 형에게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을 배웠다. 과거에는 현상도 힘들고 사진 한 장을 팩스로 보내려면 5시간이나 필요했지만 지금은 디지털로 바로 사진을 보낼 수 있다. 내가 들고 있는 컴퓨터가 바로 암실 역할을 한다. 쾰른에서 공로상을 받을 때는 내 이름이 새겨진 라이카 M9-P를 받았다. 이 라이카 M9-P가 트로피인 셈이다.




AP 소속 사진가로 계속해서 보도사진을 촬영했다. 한 때 할리우드 스타를 촬영한 사진으로도 이슈가 되었는데 보도사진가로써 계속해서 활동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AP에 약 50년 가량 근무했다. 베트남에서 사진을 찍을 때부터 할리우드에서 카메라를 들었을 때까지 내 이야기를 엮어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스토리에 매력을 느껴 사진을 찍고있다. 스토리는 전장에도 있지만 할리우드에도 있다. 할리우드에서 좋은 사진을 더 많이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퓰리처 상을 수상한 사진기자였기 때문이었다. 배우들이 나를 알아봤고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다. 패리스 힐튼이 감옥에 갈 때도 내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신문의 첫 머리를 장식 했었다. 그 날이 우연히 네이팜탄 소녀를 촬영했던 날과 같은 6월 8일이었고 시간도 동일한 12시였다. 내가 촬영한 사진이 실린 기사 제목이 바로 “지옥에서 할리우드까지”였다.




ⓒ Nick Ut


AP 사진가로써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당신의 계획은 무엇인가? 어떠한 삶을 살고싶은가?

AP에서 일한 이유는 사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사진이 좋다. AP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매일같이 사진을 찍고 있다. 달, 꽃, 일상 등 모든 것을 찍는다. 나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방문한 만큼 판문점에도 가볼 계획이다. 그곳에서 촬영하고 싶은 사진을 생각해두었다. 촬영한 사진은 인스타그램(@utnicky)에 올리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진을 찍고 공유할 계획이다.




<사진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 디지털카메라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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