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시작된 펜탁스의 이야기.
프리즘에 새긴 왕의 이니셜
역사는 어떠한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브랜드의 역사를 짚어보는 것은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역경과 고난이 있고 역전과 성장이 있다. 역사를 알게 되면 브랜드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생기기도 한다. 디지털카메라매거진이 카메라 브랜드의 역사를 알아가고자 한다. 이번 순서. 펜탁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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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2017년에 발간된 기사 내용입니다. 본문 내용은 당시 기준이며, 현재는 변경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카메라 시장에 SLR 시스템을 도입하다
▲ (좌) 눈을 형상화한 로고. / (중앙) 펜타프리즘을 형상화한 로고. 한동안 카메라 상단에 새겨졌다. / (우) 헤드부분에는 카메라 이름인 이 로고를 새겼다.
연세 지긋하신 분에게 펜탁스(PENTAX)라는 브랜드를 이야기 하면 ‘아사히 펜탁스’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아사히 펜탁스(Asahi PENTAX)’는 ‘아사히광학공업주식회사(旭光学工業株式会社)’에서 만든 카메라 이름이었다. 1970년대 후반 렌즈와 카메라 본체에 모두 펜탁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아사히라는 표현이 사라졌지만 2002년까지 회사명은 여전히 아사히광학공업주식회사였다.
▲ (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사용한 회사 로고. / (우) 2013년 8월부터는 리코이미징의 카메라 브랜드가 됐다.
현재 펜탁스는 카메라 제조사가 아닌 리코이미징의 브랜드다. 2011년 7월 1일 주식회사 리코(株式会社リコー)가 주식회사 호야(HOYA株式会社)의 이미징 사업부를 인수했고 같은 해 10월 1일에 ‘펜탁스 리코 이미징 주식회사’를 설립했다가 2013년 8월 1일부터는 사명을 펜탁스가 빠진 ‘리코 이미징 주식회사’로 바꿨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아닌 제조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리코와 펜탁스 양쪽을 모두 다뤄야 하지만 리코 역시 1930년대부터 활발하게 다양한 카메라를 만들어 온 독자적인 브랜드이기에 이번에는 ‘펜탁스’에 집중하고자 한다.
▲ 코니카의 전신인 로쿠오우사의 폴딩 카메라 팔레트. 펜탁스는 이 카메라의 렌즈를 만들었다.
펜탁스는 1919년 쿠마오 카지와라(梶原熊雄)가 설립한 아사히광학공업합자회사(旭光学工業合資会社, 이하 아사히광학)로부터 시작한다. 처음 이 회사는 안경 렌즈를 만들고자 설립됐지만 이후 쌍안경, 영화 상영용 렌즈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31년에는 일본 광학공업회사로는 최초로 카메라용 렌즈 설계를 완성하고 로쿠오우사(六桜社,이후 코니카 미놀타가 됨)의 폴딩 카메라 팔레트에 납품하면서 카메라 사업에 뛰어든다.
▲ 일본 최초 35mm 필름 SLR 카메라 아사히 플렉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광학회사는 카메라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에 참여한 기자들이 일본 35mm 카메라를 칭찬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카메라 렌즈를 만들던 아사히광학 역시 이 시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 퀵 리턴 미러를 적용한 아사히 플렉스 II B.
아사히광학의 첫 번째 카메라는 1952년 탄생한다. 회사의 이름인 아사히(Asahi)에 반사라는 의미를 가진 리플렉스(Reflex)를 결합한 아사히플렉스(Asahiflex)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든 35mm 필름 SLR 카메라였다. 2년 뒤인 1954년에는 촬영 후 미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퀵 리턴 미러’를 적용한 ‘아사히 플렉스 II B(Asahiflex II B)’를 발매했다.
▲ (좌) 세계 최초로 펜타프리즘과 퀵 리턴 미러 시스템을 동시에 적용한 아사히 펜탁스. / (우) 일본 렌즈교환식 카메라 점유율 1위를 기념해 1958년에 출시한 아사히 펜탁스 모델에는 K라는 이름이 붙었다.
1957년에는 드디어 세계 최초로 펜타프리즘과 퀵 리턴 미러 시스템을 동시에 적용한 아사히 펜탁스(Asahi Pentax)를 출시했다. 펜탁스라는 이름이 카메라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이 이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아사히광학의 시설이 있던 땅이 히브리어, 라틴어에 정통한 개신교 목사이자 식물학자의 것이었는데 그가 친분이 있는 아사히광학 대표에게 오순절(Pentecost)에서 이름을 따서 붙이기를 추천하여 정해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소문이고 펜탁스에서는 공식적으로 펜타프리즘(Pentaprism)과 플렉스(Flex)를 합친 이름이라고 밝혔다.
렌즈의 화각과 밝기를 파인더에서 그대로 볼 수 있는 SLR 시스템은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사히 펜탁스는 일본 카메라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이듬해인 1958년 아사히광학은 자부심을 담아 왕(King)의 이니셜 ‘K’를 붙인 아사히 펜탁스 K(Asahi Pentax K)를 출시했다.
▲ (좌) 세계 최초로 TTL 측광 기능을 탑재한 아사히펜탁스 SP / (우) 35mm SLR 카메라와 동일한 퀵 리턴 미러와 펜타프리즘을 적용한 중형카메라 아사히 펜탁스 6X7
1960년 포토키나에서는 세계 최초로 TTL(Through-the-lens) 측광이 가능한 스포트매틱(Spotmatic)을 공개했다. 이전까지 카메라의 측광장치는 외부에 별도로 부착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스포트매틱은 현대적인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파인더 내부로 보이는 장면에 맞춰 노출을 측정했다. 행사장에서 아사히 펜탁스 스포트매틱은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스포트매틱의 양산 모델은 4년 뒤인 1964년에 아사히 펜탁스 SP(Asahi Pentax SP)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아사히광학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1969년에는 퀵 리턴 미러와 펜타프리즘을 적용한 중형카메라 아사히 펜탁스 6x7(Asahi Pentax 6x7)을 출시했다. 기존 중형카메라와 비교해 다소 컸지만 35mm SLR 카메라와 동일한 작동 방식으로 조작 방법을 새롭게 익히지 않아도 화질이 뛰어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 (좌) 아사히 펜탁스 K2는 베이요넷 방식인 K마운트를 적용한 첫 모델이다. / (우) 소형, 경량 SLR 카메라 펜탁스 ME.
왕의 이니셜 K는 1975년에 이르러 베이요넷 마운트(Bayonet mount)의 이름이 된다. 이전까지 아사히 펜탁스의 렌즈 마운트는 범용 스크류 마운트인 M42였다. K 마운트와 함께 아사히광학은 아사히 펜탁스 K의 두 번째 모델인 ‘펜탁스 K2’를 출시했다. 1976년에는 압도적인 소형,경량이면서 K마운트 렌즈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펜탁스 ME’를 발매했다. 펜탁스 ME는 크기가 작았지만 조리개 우선 자동노출 AE가 가능했고 셔터속도도 1/1000초로 빨랐다. 뷰파인더는 시야율 92%, 0.97배로 크고 밝았다.
▲ (좌) 세계 최초로 TTL 오토포커스를 실현한 펜탁스 ME F. / (우) 프로 유저의 요구에 대응해 개발한 펜탁스 LX. 1980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20년 이상 생산했다.
펜탁스 ME 시리즈는 이후 수동 모드를 더한 ‘ME SUPER’와 세계 최초로 TTL 오토 포커스를 실현한 SLR카메라 ‘ME F’로 발전한다.
아사히 펜탁스 중 생산기간이 가장 길었던 모델은 ‘아사히 펜탁스 LX’다. 1980년 니콘 F3, 캐논 F-1과 같이 프로 유저의 요구에 대응해 개발한 LX는 2001년까지 무려 20년 이상 꾸준히 판매됐다. LX의 가장 큰 특징은 필름면 TTL 측광으로 어두운 곳에서도 민감하게 작동했고 측정이 정확했다. 선택할 수 있는 파인더와 포커스 스크린도 다양했고 모터드라이브도 장착할 수 있었다.
▲ AE, AF 촬영이 가능한 하이엔드 카메라 펜탁스 Z-1
100% 전자화가 이뤄진 하이엔드 카메라 ‘펜탁스 Z-1’은 1991년에 등장한다. 이 모델은 헤드 부분에 LCD 액정을 장착하고 우측 그립 부분에 핫슈를 적용하는 등 여타 카메라와 차별된 독특한 구성을 갖췄다. 헤드 부분에 플래시를 내장한 것도 특징이다. 셔터속도는 하이엔드 모델답게 1/8000초까지 지원했고 초당 4매 연속촬영도 가능했다.
▲ 세계 최초로 AF가 가능한 렌즈 교환식 중형 SLR 카메라 펜탁스 645N
1997년에는 세계 최초로 AF가 가능한 렌즈 교환식 중형 SLR 카메라 ‘펜탁스 645N’을 출시했다. 2001년에는 펜탁스 필름 SLR 마지막 플래그십 모델인 ‘펜탁스 MZ-S’가 등장한다. 이 모델은 기존 하이엔드 AF 카메라였던 Z-1 시리즈를 대체했다. 디자인은 전통적인 형태로 돌아갔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경쟁모델과 차별화됐다.
▲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타진하고자 만들었던 풀프레임 센서를 탑재한 프로토타입 펜탁스 MZ-D는 결국 판매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대신 같은 디자인, 성능을 탑재하고 기록매체로 필름을 사용한 모델 펜탁스 MZ-S가 출시됐다.
MZ-S가 이렇게 미래적인 디자인을 갖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는데 이것이 바로 펜탁스 최초 DSLR을 시도했던 모델의 필름 버전이기 때문이다. 펜탁스는 MZ-S 출시 1년 전인 2000년 포토키나에서 프로토타입 DSLR을 선보인다. 약 600만화소 풀프레임 센서를 탑재한 MZ-D는 시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판매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펜탁스는 약 16년이 지난 2016년에 이르러 풀프레임 센서를 탑재한 DSLR인 K-1을 출시했다.
APS-C 사이즈에서 중형까지
▲ (좌) 펜탁스 첫 DSLR인 *ist D. / (우) 센서시프트 방식 손떨림 보정 기능이 적용된 펜탁스 K100D.
2002년에는 회사명을 ‘펜탁스 주식회사’로 바꾼다. 해외에서는 1976년부터 일찌감치 펜탁스라는 사명을 사용했지만 일본 본사 이름은 디지털화를 목전에 둔 2002년에 이르러서 바뀌었다. 펜탁스의 DSLR 시장 진입은 2003년이다. 첫 모델은 필름 카메라 *ist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ist D로 600만화소 CCD 센서를 탑재하고 빌트인 플래시로 무선 P-TTL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2006년에는 K시리즈가 DSLR로 부활한다. K100D는 *ist D시리즈와 비슷한 600만화소 APS-C 사이즈 CCD 센서를 갖추고 1/4000초 셔터속도 촬영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센서 시프트 방식 손떨림 보정 기능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었다.
▲ (좌) 방진·방적 기능, 마그네슘 바디, 시야율 100% 파인더 등 고급기에 어울리는 기술을 적용한 펜탁스 K-7. / (우) 4000만화소 CCD 센서를 탑재한 중형 디지털 카메라 펜탁스 645D.
2009년 출시한 K-7에 이르러 K 시리즈는 드디어 한 자리수에 돌입한다. K-7은 고급기에 어울리는 방진·방적 기능 마그네슘 바디에 시야율 100% 광학 뷰파인더를 탑재했다. 풀HD 동영상 촬영도 가능했으며 센서 시프트 방식 손떨림 보정 기능도 그대로 유지했다.
중형 디지털 카메라인 펜탁스 645D는 2010년에 등장한다. SLR 구조를 그대로 채용한 펜탁스 6X7로 사용자들이 편하게 중형 포맷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던 것처럼 디지털 카메라 역시 기존 645N과 동일한 구조에 이미지 처리 방식만 디지털화 한 형태였다. 덕분에 사용자는 DSLR을 사용하는 감각으로 간편하게 중형 포맷 디지털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 (좌) 2014년에 출시한 펜탁스 645Z는 틸트 LCD 모니터, 라이브뷰, 풀HD 영상촬영 기능 등 최신 렌즈교환식 카메라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 (우)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쏟은 플래그십 풀프레임 DSLR 펜탁스 K-1.
펜탁스의 중형 디지털 카메라는 2014년에 펜탁스 645Z로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된다. 센서는 4000만화소 CCD에서 5100만화소 CMOS로 변경돼 고감도 촬영 및 라이브 뷰 촬영이 가능했다. 또한 풀HD 동영상도 기록할 수 있었다.
대망의 풀프레임 DSLR은 2016년에 등장한다. 펜탁스 특유의 각진 펜타프리즘을 강조한 K-1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의 마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유효화소수 3600만화소 풀프레임 CMOS 센서는 인기 있는 펜탁스 렌즈를 초점거리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풀프레임 DSLR 중에서는 유일하게 센서 시프트 손떨림 보정 기능을 적용했고 AF도 25크로스타입 33포인트로 풀프레임에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펜탁스는 SLR 카메라 시장의 선두주자였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제조사이기도 하다. 펜탁스의 역사에 최초라는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지금도 펜탁스는 독자적인 색깔을 이어 간다. 사진을 찍는 동안 특별한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소 힘든 시기를 거치며 이제는 리코 이미징의 브랜드가 되었지만 펜탁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카메라를 만들고 있다. 그 이름이 여전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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